[스레딕] 레전드 이야기 - 꿈중독 3
스레딕 레전드 썰 꿈중독 3스카이블루를 봉쇄한다는 소리를 듣고 가장 무서웠던 건 바로 나였다 정호연을 만날 수 없게 되니까.
진과 세이의 말대로라면 정호연도 스카이블루에 갇히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이것이 최선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괴로운 건 어쩔 수가 없어서,
진에게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어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받았다.
그 후로 스카이블루와 다른 섬의 단절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나는 현실에서나 꿈 속에서나 걱정에 아무 일도 못했다.
단절 작업은 일주일 가까이 이루어졌다.
진은 나에게 협조를 요청했지만 나는 도무지 간원의 힘을 쓸 만큼 집중할 수가 없어서 거절했다.
대신 정호연과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다.앞으로는 영영 못 보게 된다는 현실이 너무 냉혹했다.
나는 그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 두기 위해 미친 듯이 잠만 잤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질 때가 될 때마다 부둥켜안고 울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현실에서조차 그의 생각에 눈물이 났다.
일주일이 지나고, 진은 정호연을 강제로 데리고 사라졌다.
나와 그는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부짖었던 것 같았다.
일어나고 나서도 정신없이 울다가 탈진한 나는 그 후 사나흘간 심한 감기에 걸려 꿈을 꾸지 못했다.
감기가 낫고 다시 꿈으로 진입했을 땐 봉쇄가 완전히 끝난 뒤였다.
스카이블루 섬 주변으로 강한 회오리가 몰아치고,
그 주변으로 강한 해류가 흘러 아무도 접근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 나한테 진은 잔인한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나오는 갇힌 자는 무조건 스카이블루로 강제로 데려간다고.
스카이블루는 이제 낙원이 아니라 갇힌 자들의 다른 영역이 되는 거라고.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진은 다시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갇힌 자들은 이곳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낙원으로 즐길 수가 없다..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정호연을 하루빨리 잊으라는 말도 했었다.
나도 진의 말에 머리로는 공감했다.
애써 그를 잊으려고 다른 섬 주민과 어울리고 현실에도 충실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떠올라 나도 갇힌 자가 되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5월까지 그랬던 것 같다.
미스틱의 해변가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었다.
다른 것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어깨에 새를 앉혀 둔 것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새를 잘 길들이는 정호연의 능력이 생각나서였다.
스카이블루를 낙원으로 즐길 때에는 훌륭한 놀이였지만,
생존을 위해 사는 지금 그에게 있어 새를 길들이는 능력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며
그를 향한 걱정이 북받쳤던 것 같다. 내가 갑자기 울자 그 남자는 날 위로했다.
아마도 이렇게 좋은 곳에서 울 일이 뭐가 있냐는 식으로 말하며,
새에게 묘기를 부리게 했다. 정호연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좋은 곳은 처음이라면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놀 수 있다고 했다.
순간 정호연의 모습과 겹쳐서 화가 났다.
지금쯤 그 사람은 꿈도 희망도 없이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스카이블루 섬에서 버티고 있을 텐데.
스카이블루 섬이 놀기에는 좋을 지 몰라도 살기에는 결코 좋지만은 않은 환경인데.
근데 이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행복하다느니 좋은 곳이라느니 그런 말을 한다.
논리적으로는 화가 나는게 이상했지만, 분명히 나는 화가 엄청나게 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생존이 아니라 그냥 놀러오는거니까 좋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엄청 폭언을 퍼붓고 가버렸던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뒤로 섬 주민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열화가 솟구쳤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도 꿈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미스틱 섬 해안가에 앉아 있으면 회오리에 감싸인 스카이블루 섬이 아주 잘 보였다.
나는 정호연 대신 꿈 속에서 종일 스카이블루 섬 쪽을 보다가 깨곤 했다.
그도 이렇게 내 쪽을 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울다가 깨곤 했다.
견디다 못한 나는 헤엄쳐서라도 스카이블루로 진입하려고 했다.
어차피 현실의 몸이 살아있는 이상 꿈에서 죽어도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바람 때문에 아무리 헤엄쳐도 일정 거리 이상은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그저 물 속에서 머리만 내놓고 바람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살시도를 해볼 생각도 했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무서웠다.
게다가 사라졌던 주민들 중 돌아온 사람들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고뇌하던 나는 생각을 바꿨다 갇힌 자가 되는 게 아니라 갇힌 자인 척을 하자고.
하지만 그러자니 문제가 있었다
갇힌 자는 단 하루도 섬에 없는 날이 없었다.
완전히 섬에서만 살기 때문에 하루종일 섬에 있었는데, 내가 그럴 수는 없었다.
수면제를 먹어 계속 자는것도 생각해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시간 배율이 규칙적인 건 아니었지만 현실 시간보다 꿈 속의 시간이 더 빠른 것은 확실했으니까.
불과 몇 시간만 깨어나 있어도 꿈에서는 며칠이 지나가 버린다.
그 문제를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할 수가 없어서 6월 중순까지 울며 고민만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대규모의 갇힌 자들이 한꺼번에 진에게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스틱 섬은 다른 섬보다 좀 더 넓고, 숲도 울창했는데 그 때문에 장기간 들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숲의 자원들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소모되는 것을 본
진과 레이, 세이가 본격적으로 섬을 이잡듯 뒤져서 모두 찾아낸 것이었다.
당연한 결과로 모두 스카이블루 섬 추방령이 내려졌다. 50명이 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 많은 숫자라면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로 들어가도
진이 눈치채지 못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운이 좋았는지 갇힌 자들 중에는 나와 체구가 비슷한 여자들이 꽤 있었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에게 접근해 바꿔치기를 제안했다.
상대방은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는 옷을 바꿔입었다.
나는 그 사람과 비슷하게 머리도 자르고 표정과 말씨도 연습하면서 최대한 위장을 했다.
추방하는 날은 꿈 속 시간으로 2주 뒤였는데,
나는 일부러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날을 샌 뒤 깊이 잠들었다.
계산이 맞아떨어져 적당한 타이밍에 미스틱에 들어올 수 있었다.
추방령을 어떻게 실행하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무작정 그 사람을 빼돌리고 대신 줄을 섰다.
잠시 후 진이 직접 추방을 실시했다. 바람을 태워 섬 안으로 날려보내는 무식하고도 별난 방법이었다.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바람의 간원자를 찾아볼걸.. 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이 대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
자기니까 되는 거라고. 다른 사람이 시도하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고.
어쨌든, 추방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한 사람씩 회오리 너머로 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진은 이미 추려낸 사람들은 주의 깊게 체크하지 않았다.
아마 자진해서 스카이블루 섬에 가려는 사람이 없을거라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진은 너무나도 쉽게 나를 스카이블루로 보내줬다.
스카이블루는 얼핏 보기에는 그대로였다.
처음에 진, 레이, 세이와 함께 개척했던 흔적들을 보고 나는 한동안 그대로 목놓아 울었던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정호연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섬을 돌아다녔다.
현실에서 최대한 기억을 살려내서 공책에 지도를 그리고 꿈에서 깰 때마다 갔던 곳을 체크했다.
집념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며 메모하고 암기했다.
주민과의 대화는 최대한 삼갔다. 혹여나 내가 갇힌 자가 아니라는 것을 들킬지도 몰랐으니까.
같은 맥락으로 최대한 다른 주민의 눈에 띄지 않게 다니는 것도 중요했다.
5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유입된 탓에 원래 있던 거주민들은 나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고,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찾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쯤 지나서 나는 한 동굴에서 정호연을 찾아냈다.
그는 살이 쑥 빠지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다.
낡은 동굴에 풀을 깔고 서툰 솜씨로 만든 그릇들이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었던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손에 생긴 굳은살과 흉터를 보니,
그가 나와는 달리 정말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만남은 역시나 통곡이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이나 울고 나서야 나는 자초지종을 말할 수 있었다.
이어 정호연은 자신이 이곳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슬펐고, 또다시 화가 났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멋대로 생각하고 갇힌 자가 되었으면서,
최초의 갇힌 자였던 정호연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가 집을 놔두고 동굴에서 살고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무엇을 먹고 살았느냐는 질문에 정호연은 매우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능력은 사용처가 바뀌어 있었다.
무척이나 잔혹한 일이었지만, 그는 새를 길들인 뒤 살찌워서 잡아먹어 가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실제로 그가 새를 잡아서 털을 뽑고 조리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아무 말 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먹먹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새에게 묘기를 부리게 하지도 않았고 새와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가 새고기를 먹는 것을 보며 이제 어떻게 할 지 생각했다.
거짓으로 진을 속여서 들어왔고, 게다가 원망받고 있는 정호연과 친하기까지 하니
주민들에게 정체를 들켰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맞아 죽기만 한다면 두렵지 않겠지만,
나나 정호연을 진이 완전히 이 세계에서 추방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 때까지도 현실보다 꿈이 좋았다.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현실과 달리, 섬으로 가면 정호연이 있었다.
그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든 들어주었고 언제든지 나를 안아주었다.
바깥이 지옥일지언정 그 동굴 안만큼은 또다른 낙원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햇볕도 들지 않는 동굴 안에서
이런 저런 물건을 정리해주거나 그가 도구를 만드는 것을 돕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하루종일 서로 안고 얘기를 했다.
비가 오면 비를 보며 얘기하였고
나뭇가지로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비록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밝은 불을 피우지는 못하였지만 그 정도라도 행복했다. 하
지만 정호연은 이제 나와 다른 존재였다.
바닥이 찬 동굴에서만 지내던 그는 어느 날 비를 쫄딱 맞고 오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의학에 관한 지식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그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나는 닥치는 대로 현실에서 의학 서적을 뒤져 보았지만, 전문용어 투성이라 내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매일 깨고, 다시 잠들 때마다 정호연의 상태는 눈에 띄게 안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기 위해, 혹시나도 그가 내가 없는 사이 죽을까 봐
수면제를 상시로 들고 다니며 한두시간 정도의 텀을 두고 짤막하게 잠을 잤다.
수면제에 내성이 생겨서 예전처럼 강한 효과가 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몸은 더욱 만신창이가 되어갔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도무지 체력이 버티지 못할 임계점이 왔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날 섬으로 진입한 나는 오랜 시간 생각한 끝에, 추방당할 각오를 하고 섬 외곽으로 나섰다.
외곽은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람들이 울타리도 세우고 다른 이런저런 장식품도 만들어 둔 탓이었다.
어망도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연인이 죽어간다며 빌었다.
몇 사람이 나를 뿌리치고, 곧 한 사람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는 나더러 연인이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사실을 모두 실토하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적대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던가 싶을 정도로.
몰려들었던 섬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수군대더니 나에게 이윽고 정호연이 있는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동굴로 안내했고 날 도와주겠다고 했던 사람이 정호연의 상태를 살피는 것을 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 뒤로 나는 긴장했던 게 한꺼번에 풀려서 몸살이 났다.
며칠간 몸을 추스르느라 나는 꿈에 진입하지를 못했다.
너무 아프니까 오히려 꿈 생각도 잘 안 나더라.
며칠 뒤에 나는 다시 스카이블루에 진입할 수 있었다.
섬에 들어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굴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정호연은 증상이 많이 나아진 듯 안색이 많이 괜찮아져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에 감동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들은 내가 온 걸 어찌 알았는지 금방 동굴로 달려왔고, 나를 둘러쌌다.
이어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협박조로 제안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진에게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리겠다고.
그럴 거면 대체 왜 정호연을 낫게 해 준 걸까. 그런 의문은 곧 풀렸다.
사람들은 내가 어찌할 틈도 없이 정호연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한쪽 끝을 튼튼한 나무에 묶어버렸다.
협박은 진에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협박이 듣지 않을 것을 우려해 정호연을 인질로 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진을 속여서 이곳으로 왔기에, 다시 나갈 방법 따위는 알지 못했다.
애당초 나갈 것을 염두에 둔 적도 없었으니까 솔직하게 그것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다.
이유를 물어봤었다. 이곳도 충분히 살기 좋은데 왜 나가려 하느냐고.
스카이블루, 스카이그린, 미스틱은 지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후와 환경조건을 갖추었는데 말이다.
한참동안 대답을 미루던 그들은 나에게 말했다.
밖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고 이 세계를 아예 점령하겠다고.
그들은 진이 자신들의 의견은 한 마디도 묻지 않은채
스카이블루에 강제로 연금하다시피 한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나는 갇힌 자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들의 화가 정말 컸다는 것은 체감할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순순히 협조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진에게 모든 것을 알릴까... 하고.
꿈 중독을 벗어난다는 선택지따위는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일 때에도, 언제나 그 문제를 생각했다.
소설을 쓴다고 둘러대며 현재 상황이라면 너는 어떻게 할거야? 라는 식으로
지인들에게도 물어봤던 것 같다.그 중 한 지인의 대답이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자기 같으면 간원의 힘을 써서 오히려 역으로 협박을 하겠다고.
그 때까지 나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물의 간원자였고, 섬 주변은 온통 물이었다.
즉 섬에서의 나는 매우 강력한 물리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걸 스스로 깨닫지 못할 정도로 나는 몹시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꿈 속으로 들어간 나는 정호연 주변으로 경비처럼 선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묶어 놓는 것만으로는 정호연이 탈출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교대로 경비를 서는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나왔다.나는 부아가 치밀어 간원의 힘을 최대한 많이 끌어올렸다.
화가 난 만큼 힘이 많이 사용됐는지, 섬 주변에 파도를 이끌어 올 수 있었다.
나는 바닷물로 머리를 꼿꼿이 세운 거대한 뱀의 형상을 만든 뒤
그들에게 말했다. 당장 어제 나에게 협박했던 남자를 데려오라고.
그들은 의외로 순순히 그 남자를 데려왔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씨였던 것 같다.
하씨는 거들먹거리며 나를 보더니 난데없이 칼로 나를 위협했다.
들고 있던 칼은 도무지 섬에서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날카로운 돌칼이었다.
그는 바람으로 절삭하는 게 자신의 특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왜 그 사람이 비교적 젊어 보였는데도 리더격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바람은 물보다 훨씬 주변에 많았으니까
하씨는 나에게 허튼 수작 부리면 정호연을 죽이고 나를 고문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나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산 자였으니까.
그렇지만 정호연을 죽인다는 말에 움찔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강경하게, 나는 이곳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들어왔다고 말하며 파도를 가리켰다.
나와 정호연에게 더 이상 위협을 가한다면 해일로 섬을 쓸어버리겠다고.
정호연이 죽는다고 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
나를 죽인다 한들 다음날에 다시 들어와서 이곳을 쓸어버릴 거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 하씨도 한풀 기가 꺾이는 듯 싶었다.
그는 후회할 거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가 버렸다.
나는 정호연을 묶은 밧줄을 끊어내며 서럽게 울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설움과 분노가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는 한없이 말도 않고 울기만 했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협박이 효과가 있었는지 사람들은 더 이상 정호연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날이 지나갔다.
그렇게 사,나흘정도 지났을까. 난데없이 레이가 섬에 나타났다.
해변가에 나타난 레이를 보고 나는 기절할 듯이 놀라 동굴로 숨어들었다.
정호연에게 말하니, 그는 레이가 원래 간혹 섬을 살피러 온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동굴에 있던 커다란 항아리 안에 숨어서 레이가 그냥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레이가 동굴까지 왔는지 말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것 같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몇 번 오고 갔다.
한참을 숨죽여 기다리던 나는 레이의 한 마디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 거짓말을 잘 하네요.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생각해 보면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였다.
레이, 세이, 진은 내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최초의 3인.
아마 섬을 처음으로 만든 것도 그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무슨 능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저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채로
레이가 돌을 던져 항아리를 깨부수고 분노에 가득찬 시선을 보내는 걸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레이는 일주일 간 머리를 식히라고 말하며 내 눈을 감겼다.
눈을 뜨니, 그곳은 내 침대였다. 현실로 또 추방된 것이었다.
실화 괴담 남대문 569 청바지 (0) | 2020.04.24 |
---|---|
[스레딕] 레전드 이야기 - 꿈중독 4 (2) | 2020.03.21 |
[스레딕] 레전드 이야기 - 꿈중독 2 (0) | 2020.03.19 |
[스레딕] 레전드 이야기 - 꿈중독 1 (0) | 2020.03.18 |
[괴담] 절친한 인형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