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딕] 레전드 이야기 - 꿈중독 1
스레딕 레전드 썰 꿈중독 12년 전이였다
난 평소에도 루시드 드림을 잘 꾸는 편이었는데 아마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해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았고 그래서 그런지 유독 꿈을 많이 꿨던 것 같다.
대부분 별 의미 없는 개꿈이었지만
딱 한번 정말 현실과 분간이 가지 않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아주 아름다운 섬이었다.
무인도 같았는데, 작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고
여자 두명 남자 한명 있었어 그 세사람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기억나
여자는 레이,세이 남자는 진
판소같은 이름이지만 뭐 어때 꿈이잖아
레이랑 세이는 자매같았다. 셋다 생긴건 한국 스러웠는데 ..
어쨌든 세 사람은 꿈속에서 날 무척 반겼다
꿈속에서도 나는 무척 의아해서 여긴 어디냐 물었던 것 같아
아마 답변은 이제 곧 만들어질 도시라고 했나 섬이름도 없다고
그러면서 내 이름을 묻더니, 섬 이름을 지어달래. 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어.
한참 고민하다가 지은 이름은 스카이블루였다.
하늘색 바다랑 하늘 빛깔이 예뻤거든. 지금 생각하면 참 네이밍 센스 없다 싶지만.
어쨌든 세 사람은 동의했고. 섬 이름은 스카이블루가 됐어.
그날 꿈은 그렇게 섬 이름을 짓고 팻말을 세우고, 씨앗을 조금 뿌리다가 끝난 것 같아
난 이게 뭔 개꿈이냐 하면서 그냥 쿨하게 잊어버렸지.
그런데 며칠 뒤에 같은 꿈을 꿨어.
세 사람은 나를 반겼고. 섬 이름은 여전히 스카이블루였어.
밭을 일구었는지, 밭이 생겨나 있었고 허술하긴 하지만 집도 있었어.
난 신기해서 우와. 하고 있는데 진이 진짜 진지돋는 얼굴로 나한테 왔었다.
아마 했던말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도와달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섬이 꽤 맘에 들기도 했고 꿈치고 현실감이 너무 넘쳐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꽤 자주자주 그 섬의 꿈을 꾸었다.
레이, 세이, 진은 매번 그곳에 있었어.
나는 섬에서 낚시를 하거나, 나뭇가지를 꺾거나, 허드렛일을 돕고 뭐 그 정도였지.
그래도 꿈을 매번 꿀 때마다 보금자리가 발전되는 게 신기했어. 게임하는 기분이었다.
한번 꿈을 꿀 때, 최고 길면 3일 보통은 반나절만에 깼어. (물론 꿈 속 시간 기준으로)
하루하루 사는게 재밌어졌지.
솔직히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이었는데 진짜 엄청난 활력소가 생긴 셈이였어
그렇게 한달쯤 지났었나. 스카이블루 섬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됐다.
번듯한 나무집에 양 몇마리가 있고 밭도 있고.
물고기도 잡아다 훈제로 구워먹는 그런 곳이 된거야.
하지만 세 사람은 별로 만족하지 않는 것 같았어.
이유를 물어봤던 것 같아. 별로 기쁘지 않냐고.
좋기는 한데, 사람이 나 말고는 한 명도 오질 않아서 그게 마음에 걸린다는 답을 들었던 것 같다.
난 반쯤은 호기심에, 별 기대도 안하고 물어봤어. 나는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요 ? 라고.
아마.. 대답한 내용이 다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자기들은 그저 간절하게 원했을 뿐이라고. 힘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는데 내가 왔다. 그래서 좋다. 그 정도로 들었던 것 같아.
나는 아 그렇구나.하고 그냥 넘겼어
사실 그때쯤 되어선 이미 내가 어떻게 그곳의 꿈을 계속 꾸는지
어떻게 꿈이 계속 이어지는지 같은건 관심이 없었어
아니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재밌었으니까.
그때 현실의 시간은 여름방학이 될 쯤이었다.
일단 세 사람과 나는 계속해서 섬을 개척했어.
이미 네 명이서 살기엔 충분하고도 남았지만 더 올 사람을 대비한 거지.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다른 사람이 뚝 떨어졌어. 진짜 말 그대로 뚝 떨어졌다.
여느 날처럼 꿈을 꾸고 섬에서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해변 위로 뚝 떨어진 거야. 진짜 소설처럼.
꿈이라 그런지 엄청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도 전혀 안 다쳤더라고.
젊은 남자였어. 이름이. 아마 현수였던가 현서였던가 그랬을 거야.
내가 그랬듯이 이 남자도 굉장히 황당하고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레이, 세이, 진은 엄청 반갑게 남자를 맞이했어.
난 그쯤 해서 이게 진짜 꿈인지 다른 세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됐지.
무엇보다 이 현수라는 남자는 완벽하게 한국 사람 같았다.
어디 사는지, 연락처는 무엇인지, 직업은 뭐인지는 물어보지도 못했지만.
아, 자기 입으로 대학원생이라고 한 것만 들었다.
세 사람은 무척 기뻐했어. 드디어 사람이 오기 시작했다면서.
현수라는 남자를 극진히 대접한 세 사람은 나한테 했던 말을 비슷하게 했다
이러이러한 곳을 만들고 있으니 조금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남자는 자기가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던 것 같다.
세 사람은 당황한 것 같았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언제든지 이곳에 와서 쉬어도 된다고 했던것 같다.
결국 현수도 그러겠다고 했어. 그리고 네 명이서 여름 내내 거진 섬 전체를 개척한 것 같다.
정말 작은 섬이였으니까. 개척이라고 해봐야
집을 지어놓고, 동물을 기를 수 있게 마당도 만들어 놓고, 길도 터놓고 그 정도였던 거 같아.
나는 그 꿈을 꾸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늦게 자는 타입이었는데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해서는 10시가 되면 칼같이 잠자리에 들었다.꿈을 꾸고 싶었으니까.
채팅도 온라인게임도 하지 않게 됐어. 꿈이 더 재밌고 실감 넘쳤으니까.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어.
그냥 일찍, 좀 많이 자는 정도. 오히려 수면 부족이 해소되어서 낮에 더 쌩쌩해졌어.
꿈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걸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지만..
어쨌든, 섬은 계속 개척되었고, 두 명의 사람이 더 떨어졌다. 여자 둘이었다 이번엔.
어려 보였어. 10대 초반? 초등학생으로 보였던 것 같아.
이름은 지희, 연희. 내 친구랑 이름이 같은 아이가 하나 있어서 금방 기억했지. 귀엽게 생긴 애들이었어.
난 유독 그 애들한테 눈이 가서 정말 잘 해줬던 것 같아.
얘기도 많이 하고 먹을 것도 많이 주고. 집에 자주 찾아가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자각한 건 그쯤부터였다.
나는 그 애들한테 과일이나 꿀, 주먹밥 같은걸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아우 요 찹쌀떡 같은 녀석들~" 하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어.
하루는 집 앞 슈퍼에서 같은 아파트 아주머니를 만났다.
근데 아주머니 딸이 딱 지희, 연희같았어.
귀여워서 사탕이나 하나 사주는데, 나도 모르게 꿈속의 버릇이 나왔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저 대사를 했어. 어투도 표정도 똑같이.
참고로 꿈을 꾸기 전엔 없던 버릇이었어. 그걸 깨달은 건 집에 돌아와서였다.
꿈 속에서 생긴 버릇대로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행동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
하지만 되게 사소했기 때문에 뭐 아무려면 어때? 하고 넘어갔다. 근데 이게 문제였지.
꿈을 처음 꿀 때에는 꿈속의 나와 현실의 내가 완전히 똑같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속의 내가 현실의 나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거든.
일단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버릇 같은 게 조금 변했다.
현실에서는 다리를 떠는 버릇이 있지만 꿈 속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게 됐다던가..
현실에서는 장애물이 나오면 돌아서 가지만 꿈 속에서는 뛰어넘는다거나.
무엇보다, 현실보다 꿈 속에서는 몸이 훨씬 가벼웠고 민첩했다.
이게 꿈에 중독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
음 .. 그리고 일반적인 루시드드림과 섬 꿈은 뭐랄까 좀 다른 점이 있었어.
난 섬 꿈을 꿀때 이것이 꿈이라는 것은 자각해. 하지만 마음대로 깨기도 쉽지가 않고,
그렇다고 가위를 눌리는 것 같진 않거든.
그리고 분명히 내 꿈일 텐데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하늘을 날거나
없는 걸 창조한다던가 하는건 불가능했어. 어째서인지 꿈속의 나는 그걸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꿈 속에서는 가볍게 날듯이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고 헤엄을 치고...그러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둔하고.
예를 들면 꿈에서는 좀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가뿐하고 멀쩡하게 착지했지만,
현실에서는 조금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려 해도 무섭고,
뛰어내려도 발목이 아프거나 넘어지고 그런 차이.
물론 실제적으로 건강에 이상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지.
그만큼 꿈속에서의 내 몸상태는 환상적이었고 물리법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 같아.
꿈이니까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스카이블루 섬은 날로날로 활기차지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졌는데, 하나같이 행복해하고 있었어. 서로가 도우면서 즐겁게 살고 있었어.
낮이면 일을 하다가 한가롭게 낚시를 가기도 하고
할 일이 없다 싶으면 다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생선도 굽고 새를 잡기도 하고...
사방치기라던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고전적인 놀이도 했어.
힘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식량도 물도 모든 게 넘쳐났어. 싸울 일도 없었고.
공부에 지친 나에게 그곳은 마약 같은 낙원이었어.
그쯤 해서 나는 학교에 지각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어.
꿈을 꾸고 싶어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어.
심한 날은 몸이 아프다면서 정규수업만 끝마치고 바로 집에 와서,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잠들어서 다음날 낮에서야 일어난 적도 있어. (물론 주말)
시간으로 치면 12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잠만 잔거야.
물론 섬의 꿈을 매일 꾸지는 못했어. 자주 꾸면 이틀에 한번. 보통 일주일에 두세번 꼴.
꿈을 꾸지 못한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어. 하지만 스카이블루 섬에 있을 땐 정말 좋았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그렇게 잠을 많이 잤는데도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졸았던 날이었어.
우리 교실은 3층에 있었는데, 건물 밖에서 누가 날 불렀다.
난 졸음이 채 깨지 않은 채로 창문을 열고 날 부른 친구를 보았고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창문을 훌쩍 넘어갔다.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 이미 몸이 창밖을 넘어간 뒤였어.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높지 않은 높이인데다가 화단에 떨어져서 그랬는지
목숨에 지장이 생길정도로 다치진 않았지만, 다리뼈에 금이 가고 말았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난 알 수 있었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내가 또 꿈속의 버릇대로 행동했다는 걸.
꿈속에서 나는 그렇게 훌쩍훌쩍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장애물을 넘어도 전혀 다치질 않았었으니까.
그쯤해서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근데 난 정신을 못 차리고 병원에서도 내내 잠만 잤어
잠이 안 와도 어떻게든 잠들려고 누워 있었지.
다리뼈는 금방 붙었지만
학교로 돌아가니 나에 대해 온갖 소문이 퍼져 있었다.
창문으로 뛰어내린 게 투신자살 시도였다느니
친구 머리위로 떨어져서 같이 죽으려고 하는 거였다느니..
정말 말도 안되는 억측이 난무했는데.. 다 해명할 능력도 없었을뿐더러
나는 그쯤해선 이미 현실에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별 말도 하지 않고 성격도 음침해져 버린 데다가 (만사에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
틈만 나면 잠을 자느라 연락도 잘 안 받고 하니까 친구들도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나는 꿈을 꾸는 것만 마냥 좋아서 잠을 잤지.
이젠 수면이 충분한 걸 넘어가서 수면과다였지. 항상 멍한 상태였고,
잘 움직이지도 먹지도 않고 잠만 자서 체중이 줄었어.
물론 근육이 빠진 거라 체력은 훨씬 낮아졌고. 성적은 말할 것도 없었지.
모의에서 확 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이 불러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나는 잠을 잤다. 현실이 비참해질수록 꿈의 내가 그리웠어.
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현실 생각이 잘 나질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곳에 온 사람들이 현실의 이야기를 이상할 정도로
하지 않았던 것도, 나처럼 현실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져서, 섬이 비좁아질 지경이 되었다.
레이와 세이, 진이 사람들을 불러놓고 말했던 것 같다.
섬이 좁아졌으니, 새 땅을 찾아야 한다고. 물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땅을 찾는 방법이라는 게 정말 기괴했다. 바닷속에 있는 여분의 섬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해?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긴 스카이블루 섬이니까. 라는 생각 하나로 스스로 설득되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섬을 떠오르게 하는 방법이었다.
물과 성질이 잘 맞는 사람이 간원을 하면 물과 소통하게 되어 길을 낼 수 있고,
땅과 성질이 잘 맞는 사람이 간청하여 섬을 떠오르게 한다는... 정말 지극히 판타지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현실감각이 제로에 가까웠기에 다들 너무나 쉬울 정도로 수긍했다.
그리고 물길을 내는 사람으로, 내가 선택되었다.
이 때문에 나는 현실 감각을 더욱 잃고 말았지. 꿈과 현실이 너무나 비교되었기 때문에.
무언가 유용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선택되었고,
그로 인해 기대를 받고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아는 사람은 이해할 거야.
현실의 나는 그저 비루하고 찌질한 은따가 되어있었는데
섬에서의 나는 땅을 띄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로써 대접을 받았어
여기서 차라리 내가 물길을 내는 데 실패했다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겠지만
너무나 어이없게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물길이 거짓말처럼 열렸다.
물이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섬이 드러난 거지.
이어서 땅을 띄우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
거짓말처럼 섬이 우뚝 솟아올라 붙었다.
그 때의 희열은 지금도 잊지 못해. 현실이 꿈이고,
사실 현실이 스카이블루 섬의 내가 아닐까 했을 정도로 생생해.
이어 다른 여러 능력자들이 간원했고
며칠 만에 섬은 풀이 자라나고 울창해졌고, 또 며칠이 지나니 어디선가 새들까지 날아왔어.
한 달 정도가 지나자 기존의 스카이블루 섬과 완전히 똑같은 환경이 되어 있었지.
그리고 우리는 새로 온 사람들과 함께 그 곳을 또다시 살기 좋게 꾸몄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간원의 능력이 있었어.
누군가는 풀을 자라게 하고 누군가는 흙이 불어나게 했어.
또 누군가는 짐승을 다룰 줄 알았고.. 그런 식이었지.
두 번째 섬은 스카이그린이라고 이름이 붙었어. 녹색 숲이 예뻤거든.
이쯤 해서 나는 엄마의 수면유도제에 손을 댔다.
정말 하면 안 되는 짓인 줄 알았지만 꿈에 대한 갈망이 너무 심했어.
어차피 잠은 어느 정도 자고 나면 그 다음부턴 졸리질 않앗으니까.
주말만 되면 몰래 수면유도제를 먹고 거의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부모님은 맞벌이였기 때문에 내가 약에 손을 댄 걸 한참이나 몰랐어.
꿈 속에서 나는 간원의 능력을 이용해 물을 가지고 노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어.
물을 가지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표현한다던가....
정말 환상이었다.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일들이 그 섬에서는 진짜 현실 그 자체였어.
소설, 게임, 드라마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람들은 조금씩이긴 하지만 꾸준히 와서 더욱더 많아졌다.
우리는 매일같이 고기와 생선, 밭에서 기른 야채를 먹고 물에서 헤엄치고 새에게 말을 가르치고,
개를 훈련시키며 그렇게 놀았다.
그러다가 필요성이 생기면 다시 다른 사람이 살 집을 만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음식도 맛이 있었어. 꿈이라 그랬겠지만. 현실에선 밥맛조차 없을 지경.
정말 내가원하는 낙원 그 자체가 그곳에 있었다. 복슬복슬한 양들을 베고 한가로이 멍때리거나
새 깃털을 만지작거리며 논다거나... 비가 오면 아무 걱정 없이 땅에 떨어지는
비를 구경하며 담소를 나눴다.
꿈에서 지내는 기간이 차츰 늘어나서, 4일 5일.. 최장 7일까지 되었다.
물론 수면유도제의 영향이었다.
몸은 형편없이 망가져서 이젠 길 가다가 힘이 없어서
픽 주저앉을 정도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정도로 안색도 나빠졌고..
엄마가 내 모습과 줄어든 약을 보고 날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가 날 추궁했지만 난 사실대로 말할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점점 대담해져서 2~3일치 수면유도제를 한꺼번에 훔쳐다가 숨겨놓고 먹기도 했고..
학교에서 감기약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수면유도제를 먹고 오후 시간 내내 자기도 했어.
결국 엄마가 일의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약을 치워버렸다.
아마 내가 모르는 곳에 숨기셨던 것 같은데
나는 꿈을 못 꾸게 되니 금단증상에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어.
현실에서 깨어있는 1분 1초가, 몸이 무겁고, 나른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감이 너무 생생해서 짜증이 났어.
게다가 이젠 몸이 너무 안 좋으니까 제대로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잘 안 되었지.
체력도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고..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지. 그 해 2학기 기말고사에서 나는 진짜 평균점수가 수직으로 하락했다.
내 성적표를 본 아빠는 크게 분노하셨고 엄마는 나보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 때 내가 한 말은 오로지 하나였다.
요새 좀 피곤해서 그래. 많이 자면 괜찮을 거야. 불면증이라서 잠을 제대로 못 자.
엄마는 그걸 그대로 믿으셨다.
엄마는 몸에 좋다는 보약이나 영양 보충제 같은 걸 나에게 먹이셨다.
그래도 별 차도는 없었지. 내가 잘 먹질 않았거든.
잠을 너무 많이 잔다고 하면, 불면증이라 자도 자도 얕은잠이라 피곤해, 라는 식으로 변명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 때, 나는 좀 멀리 있는 마트에 일이 있어 다녀오다가 쓰러졌어.
정말 어지럽다가 갑자기 정신이 뚝 끊기고 일어나니까 병원이더라 드라마 같은 상황이 코앞에 있었지.
원인은 큰 게 아니었어 잘 먹지 않아서 생긴 영양실조였어
나는 그때 하루에 한끼도 잘 안 챙겨먹고 잠만 잤거든.
며칠 동안 영양링거인가 를 맞으면서 병원에 있던 것 같아.
그 때 내 키가 160cm였는데, 몸무게가 38kg까지 빠졌다면 이해가 가려나.
어쨌든 나는 병원에서 마음껏 잤다. 엄마가 오면 아직도 아프다는 식으로 서둘러 돌려보내고 잠만 잤어.
물론 꿈 속에서는 언제나 활발하고 능력있는 나로 살았고 일단 병원에서 며칠 있다가 퇴원을 했어.
하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꿈에만 가 있었지.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해야하나 꿈속의 남자랑 그렇고 그런 관계가 시작됐으니까 정신이 나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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